좋은아빠님의 글을 처음 만난게 99년 봄 즈음인듯 싶습니다. 그해 1월 저는 첫 아들을 낳았고, 갓난 아이는 순탄하게 자라주질 않았어요. 태어나서 얼마되지도 않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엄마를 참으로 힘겹게 했었죠.
제게는 99년을 돌아보면 참으로 힘든 한해였습니다.
1월에 2.7키로의 작은아가로 태어난 경제.. 태어난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장염으로 병원을 왔다갔다 하더니 장염이 조금 나아지니 또 다른 바이러스 감염으로 2월말에 대학병원에 입원해서 갖가지 검사와 치료를 받으며 보름동안 입원생활을 하고 3월중순에 퇴원했습니다.
아이도 백일을 넘기면서 신생아티를 벗어내고 겨우 숨 돌릴만해지니 신랑이 코에 물혹이 생겨 이상이 있는데 제거 수술해야된다고 해서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갓난아이 아플때보다는 마음이 덜 불안했지만 병원을 다니고 수술을 한다는것은 참으로 사람을 고달프고 힘들게 만들더군요.
뜨거운 여름..아이를 데리고 신랑 수술하는데 보호자로 한동안 병원을 다녔습니다. 처음엔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는데 수술하면서 생각보다 물혹이 크고 또 여러개라 모두 제거하기는 했지만 뇌에 영향을 줄수도 있고 후유증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수술 후유증에 대한 책임을 묻지않는다는 각서를 다시 작성하라는 의사의 말에 당혹했습니다. 난생 처음 수술후에 각서를 다시 쓰는 황당한 경우였지요. 다행히 경과는 괜찮아서 시간이 지나면서 의사의 말은 잊혀져갔습니다.
그후 얼마지나지 않아다 다시 경제가 감기로 인한 여러가지 합병증으로 42도를 넘나드는 고열에 시달리며 설사,중이염등의 복합증세로 또 입원했습니다. 열흘간 각종 항생제와 주사제로 치료를 하니 아이는 차도를 보이고 퇴원해서 통원 치료를 하며 쉬이 떨어지지 않는 감기와 씨름을 하며 가을을 다 보냈습니다. 동네 소아과의 진료나 처방은 아이에게 전혀 효과를 보이지 않았던터라 평촌에 있는 한림대학병원을 다녔는데 병원을 다녀오면 하루의 절반이 지나가곤 하던 생활이었습니다.
아이낳고 제대로 산후조리도 못한 상황에서 아이와 신랑의 잦은 병치레로 늘 병원을 드나드는게 일과로 자리잡다보니 저는 지칠대로 지쳐가는 상황..
그런데 또 신랑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쓰러지는 것이었습니다. 증세가 심상치않아 한림대학병원으로 급히 이동했지만 대학병원이라는 곳이 내가 급하다고 빠르게 치료를 해주는 곳이 아니다보니 각종 검사하고 결과 기다리는 사이에 맹장이 터져서 다른 장기에도 감염을 일으켜 복막염이 되어 버렸습니다. 수술후 일주일간 금식을 하고 보름정도를 입원해 있었습니다.
병치레가 잦은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병원에서 신랑을 간병하는게 내키지 않아서 어차피 금식이니 하루에 한번씩 병원을 오가며 필요한것들 챙겨다 주고 신랑 혼자 입원 생활을 하게되었습니다.
무시로 병원을 드나들며 언제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게 12월을 맞았는데 하루는 병원에 있는 신랑을 만나러 가려고 차를 기다리는데 누가 떡복이를 사서 가지고 가다가 떨어뜨렸는지 땅바닥에 떡복이가 한무더기 쏟아져 있었습니다. 그걸 본 순간... 어찌나 먹고 싶던지?? 내가 왜 이럴까? 그다지 좋아하는 음식도 아닌데...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끼니를 거른지도 사나흘이 넘었고 밥 맛이 없어 물이나 우유..음료수로 며칠을 지냈구나. 그래서 별게 다 먹고 싶네.. 하며 단순히 넘겼습니다. 신랑도 입원해서 금식하고 아이도 젖을 먹일때라 나 혼자 먹겠다고 집에서 따로 밥을 하거나 식사를 준비하지 않은게 며칠이 지났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냥 지나쳤지만 그 후로도 며칠동안 땅바닥에 떨어져있던 그 떡복이가 왜 그렇게 맛있게 보이고 먹고 싶었을까 자꾸 생각이나고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그 사건후로 며칠이 지난 12월 15일.. 이상한 느낌이 들어 산부인과엘 들렀습니다. 진찰결과. 임신14주... 둘째 아이가 제게로 와 있었습니다. 임신한지 석달이 지나도록 별다른 느낌을 느끼지 못할정도로 제몸 돌보는데는 소홀했고 마음을 쓸 겨를도 없이 보냈던 시간들은 뼈아픈 후회로 제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나 혼자서 젖먹이인 경제를 돌보며 신랑의 간병등으로 병원을 수시로 드나들고 또 적지않은 물질적, 정신적 스트레스 탓인지 뱃속에 있는 아이는 심장의 맥박이 뛰지않는 이미 낳을수는 없는 아이가 되어있는 상태였습니다.
하루빨리 수술을 해야한다며 의사는 날짜를 잡고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 하는데 신랑은 복막염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이도저도 어쩌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
한없이 나른하고 힘들고 내 몸이 조금 이상하구나 생각은 했어도 경제의 잦은 병치레와 신랑의 입원, 간병등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때라 둘째가 생겼을거란 생각은 전혀 못할만큼 정신을 놓고 있었던때엿습니다. 내가 먹지않고 잠자지 못하고 힘들어 하니 태아가 떠나버렸구나 하는 죄책감에 견딜수 없었고 어떻게든 그 아이를 붙들고 싶은 생각에 산부인과를 나오면서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막막하고 눈물만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이미 심장이 멈춘 아이를 뱃속에 계속 품고 있을수는 없는 일...
시어머님께 전화를 해서 도와달라고 말씀드렸고 신랑 퇴원후에 올라오셔서 경제를 닷새동안 보아주시기로 하셨습니다.
12월 19일.. 신랑은 퇴원을 했고 저는 12월 24일.. 뱃속에 있던 둘째 아이를 하늘나라로 보냈습니다.
99년 1월에 경제를 낳고 12월에 둘째를 하늘로 보냈으니 참으로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또 펑펑 울었습니다.) 내가 살아온 삶의 시간 가운데에 99년은 최악의 힘겨운 한해였습니다. 그러나 그 최악의 세월 한모퉁이에서 자유촌과 좋은아빠님을 만난것이지요.
사람은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에 많이 부딪치며 삽니다.
제게는 참 어려웠던 시절.. 99년.. 그때에 자유촌에 들어가면 참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님들이 올려주신 글들을 읽으며 산후우울증 비슷한 힘겨움과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잠깐씩 스쳐가던 그 때.. 생활에 지치고 고달픈 여러가지 일상의 일들을 잠시 내려놓고 맞고살자, 웃고살자, 패고살자.. 또 윤미님의 몰라씨에 대한 상상.. 글이었던가?? 님들이 올려주신 글 속에 빠져있다보면 다른 이들은 저렇게 여러모양으로 사는데.. 내일은 오늘과 다르겠지 하는 그런 막연한 기대를 가지기도 했었습니다.
쓰고보니 지난 이야기를 너무 장황하게 써내려온것 같습니다.
제가 지난 이야기를 쓴 이유는 좋은아빠님이 수집한 종목을 나누어 주시는 것만이 도움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님의 글을 읽다보면 한결같은 마음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와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접근하는 관점등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찌보면 저는 님이 선정한 종목은 거의 활용해보지 못한듯 합니다. 하지만 어떤 종목을 이야기할때 선정한 이유, 가치, 앞으로의 전망, 시장상황등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시각을 통해 아.. 그래서 저렇게 판단하는구나.. 하는 관점을 배울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지금도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요즈음 님께서 고민하는 글을 올릴때마다 저러다 글 안올리시고 훌쩍 잠적하시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느끼곤 합니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 연구하고 수집한 종목들이 분명 투자가치도 있고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인데도 시장이 호응하지 않아서 낙폭이 커질때.. 정보를 나누어 주신것에 대한 책임감으로 심적으로 많은 부담을 가지시는 모습도 느껴집니다.
종목이 선전하지 못하고 장이 나빠져서 예측불허일때 좋은아빠님이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생각으론 이곳에 찾아와 좋은아빠님의 글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그는 분명 좋은아빠님을 좋아하고 또 님의 투자자세나 마인드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일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님의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이 결정한 투자에 대해 님을 탓하며 책망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보를 활용해서 투자를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결정이니까요.
남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남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것..
마음에서 빚진듯한 부담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에게 그것이 즐거운 나눔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받은 도움을 남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 되고싶고 우리들에게 이 곳이 즐거운 교류의 장으로 지속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십년 후에도.. 이십년 후에도.. 시장에 흔들리지 않고 종목의 시세에 흔들리지 않고 시간을 사는 투자자로 남아 좋은아빠님과 지니님과 노란버스와 연한커피님과 Leon님과 저와.. 이 곳을 다녀가시는 많은 님들과 우리들의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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